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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r 님과 함께하는 컵 리사이클링 후기





#1
소포를 받고 3,4일 정도
그 외형적 아우라에 대한  음미를 마치고
마침내 개봉을 하였습니다.



#2 컵과 만남

컵을 요모조모 뜯어보니, 
잔 안에 생긴 칩이며 금박이 벗겨진 상태며
나에게로 오기 전 마르고 닿도록 사용할 만큼
사랑을 받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용량은 100ml로 내가 늘 사용하는 300ml잔에 비하면 아기수준.ㅋㅋ. 
컵 궁둥이에 아무런 표식이 없어서
언뜻보면 스웨덴산이라기보다는 일본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3 컵과 함께 놀아보기

리사이클링 운동의 취지를 쌈빡하게 이어가는
 뭐 좋은 거 없을까 궁리하다가
컵을 들고 외출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3-1 그 첫번째 이야기

해마다 3월이 오면 막연히 그리운 곳이 있어요.
충남 서산에 위치한 개심사.
그냥 그립습니다.
그곳의 늙은 겹벚꽃 나무가 그리운건지
절마당을 울리는 청량한 새소리가 그리운건지
아니면 절마당에 다다르기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하는
800미터 돌계단이 그리운 건지는 잘 모르지만, 
알수없는 그리움에 몸이 달아
소풍바구니에 찻잔을 담고 개심사로 향했습니다.
요며칠 이상고온으로 아랫마을로부터 급속하게 꽃소식이 올라오길래
혹여 개심사 벚꽃도 만개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죠.

세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하고 보니  꽃은 없고,
꽃이 없으니 상춘객도 없고
그저 조용히 겨울과 봄이 공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 3-2  그 두번째 이야기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컵을 바라보았으니
그와 상반되는,
일상적이고 그 방면 고수들이 존재하는 '카페'에
컵을 데려가보고 싶어졌어요.
게다가 오픈한지 얼마안된, 반짝반짝 빛나는
신상들이 있는 공간에서 이 오래되고 케케묵은 컵은
과연 어떤 얼굴을 할까?가 궁금했어요.
바짝 쫄아서 구석으로 숨으려 할까? 
사연과 시간을 머금은 만큼 
나름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잘 어우러질까?
스스로 생각해도 재밌는 실험같아서
살짝 흥분까지 했어요.

마침 동네 천변 주변에 핸드드립 전문 까페가 생겼는데
한 달이 채 안됐고 신학기 두 아이 학부모 총회에 불려다니느라 바빠서
겉모습만 봐두고 아직 들어가보지 못한 까페, '쨈' 을 찾았어요.
봄비가 오락가락하는 주말 오후였습니다.

처음 오픈한 핸드드립전문  까페에 가면
수마트라 만델링을 주문하고
까페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버릇이 있는데 
그 까페엔 만델링이 없었습니다.
대신 케냐를 중배전하여 향이나 바디감이 아주 좋다길래
주문하여 마시며 쥔장과 이런저런 커피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며
살짝살짝  리싸이클링 컵의 눈치를 살폈어요.
호~! 이거 대단한걸. 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리네...ㅎㅎ

메뉴판에는 아직 기재되는 곳이 거의 없고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소량으로 유통되는 '코케'라는 커피가 있는데
핸드드립 실습때 딱 한번 마셔본 기억에 의하면,
꽃향기 분분하고 상큼발랄하여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딱 어울리는 커피,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놀랍게도 까페 쥔장이
코케가 조금 있는데 시음해 보지 않을래요? 라고 했어요.
너무 좋죠, 얼른 일어나 스웨덴 컵을 들고가서
리사이클링에 대한 취지를 잠깐 설명하고
" 그 '코케'는 이 잔에다 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했더니
흔쾌히, 내가 내민 잔에 커피를 따라주셨어요.
멋진 일이네요..라고 덧붙이면서.













#4  마무리

리사이클링 컵,
그것도 심리적. 물리적으로 먼먼 나라 스웨덴에서 온
컵을 받아들었을때의 감흥는 예상치못할 만큼 좋은 것이어서,
마치 후추가 내게 온 첫 날처럼 설레며
여러 영감들이 번쩍번쩍 떠올랐습니다.
정체돼 있는 일상에 신선한 기운을 얻었다고 할까요?

단지 차나 커피가 담긴 모습  컷들 몇 개만 올려도 괜찮은 이벤트라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만큼 이 운동이 제게 주는 의미가 컸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즐겁고 의미있는 운동에 동참 기회를 주신
googler님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99.9%의 만족 속에 0.1%의 아쉬움이 있다면,
내게로 오기까지 컵의 사연을  알 수 없었다는 것.
컵이 있던 공간이나
처음 소유했던 사람이나 
태어난 년도라던가  
어찌하여 내게로 보내졌는가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있었다면
거기에 덧붙여지는 내 이야기들이
더 풍부해지고 활기를 띄었을거라 짐작해봅니다.


암튼, 너무 길어 죄송합니다.
참, 훼손하기가 너무도 싫었던 소포 외형은  
잘 오려서 아래사진처럼 걸어두었답니다.ㅎㅎ

<2014.03. 컵 리사이클링 >














by 랭보 | 2014/03/30 12:27 | 말똥과 여의주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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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애쉬 at 2014/03/30 14:41
컵이 일기를 쓴 것 같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ㅎ

포도를 금빛으로 곱게 그려둔 저 도안은..... 포도를 열망하던 북구의 것일까요? 포도를 약사여래가 보내준 약으로 생각하던 일본의 것일까요?

포도가 자라서 술을 담을 수 있는 곳을 빈란드(응? 랭보님네도 빈여사가 출현하는 vin land네요 ㅋㅋㅋ)라고 부르며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북구의 열망...도 그럴싸하고 바닥아래 명문이 없으니 일본도 그럴싸하고 ㅎㅎㅎ

컵 하나로 즐거운 하루였어요 구경도 행복해요 ㅎㅎㅎ 후추만 약오르구나...나가면 간질간질 좋은데
Commented by 랭보 at 2014/03/31 11:00
애쉬님, 어디 여행다녀오셨어요?
아님 아프셨거나.....반가워요.
우선. 다시 이렇게 댓글놀이 할 수 있어서. ㅎㅎ

컵이 쓰는 일기,
와 컵이 입장에서 나를, 나의 태도를 한번 더 바라다볼까요?
던져주는 글마다 영감덩어리입니다. 애쉬님은....

Commented by 애쉬 at 2014/03/31 11:48
다른 일이 바빠서 이글루 소흘했네요....ㅎㅎㅎ 어디 못가요 후추랑 랭보님 두고 ㅎㅎㅎ
Commented by 랭보 at 2014/04/04 12:01
애쉬상, 스키데쓰~
Commented by googler at 2014/03/30 22:27
우와.... 저 금박 닳아진 테두리가 호강하네요, 랭보님댁으로 가서.~~
스웨덴은 노인들이 자식들과 함께 살려는 무드가 아니라서 대부분 나이들어 혼자 사시죠.
그러다 정 몸을 가두기 힘들어질 것을 예상하고 이제 보호를 필요로 할 시기가 올 때가 있어요, 그때
그렇게 혼자 사시다가 노인센타로 들어가시곤 합니다. (이것이 노인들의 코스...)

그 할머님은 91세가 넘으실 때까지 혼자 사셨죠, 그런 후 노인센타의 도움을 받고자
소지하신 자택을 정리하고 짐을 모두 정리하셨죠, 그분 댁에서 제게 컵이 아주 많이 들어왓어요~~

제 지인네 할머님이셨는데, 소녀같은 고운 외향을 갖고 계시고(마음도 그렇고),
남편이 옛날 스웨덴 국회의원이셨던 걸로 들었어요. 그댁 손자가 제 지인이구요. 그 손자를 통해 컵들이 한웅큼 들왔어요~~ 현재 우리집에도 저 컵이 4잔 더 있답니다. 제가 오래된 동무들이 올 때 저 잔으로
사용하고픈 감이 이는 그런 컵이죠.

할머님 연세가 있었으니 저 컵은 50년이 넘은 컵이엇다고 보심 되시구요,
스웨덴 컵입니다. 옛 스웨덴 컵들을 보면 장미꽃 문양이 딱 저런 느낌나도록 디자인된 컵들이
제법 되는데 그거처럼 저 포도 문양도 딱 그런 느낌을 주고 닳아진 느낌이 연두색에 묻어나는
곱상한 뭔가가 있어요, 저한텐 그랬죠~~
현재 한국에 들와있는 컵들 중에 바닥에 브랜드가 명시되어 스웨덴 브랜드를 갖고 있는
컵들은 요즘 공장에서 찍어내는 컵들이 대다수라고 보심 되십니다.
제가 보내드리는 컵들은 실제 옛시절에 사용하던 컵들이라 요즘나오는 컵들
느낌하곤 다른 게 많은데요,
당시에는 바닥에 아무것도 안 들어간 컵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엄마들이 시집올 때 가져오는 당시의 그런 컵이엇다고 연상하심
될 거 같애요~~

그 할머님댁에서 컵이 무더기로 저희집으로 많이 들오던 그날, 너무 신이난 나머지 저는 드릴 게
뭐가 있을꼬 생각해보다 겨우 꽃바구니 하나 노인센터로 이사가는 그곳으로 보낸 거밖에 없는 제가
참 아쉬웠는데, 그 이후 제가 이렇게 컵나눔을 하고 있는 걸로 미안감을 더는 기분이라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쏠쏠합니다~~

이렇게 성의있게 사물을 접하는 랭보님 마음이 읽혀와 보는 내내 제가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Commented by 랭보 at 2014/03/31 11:18
멋진 이야기 입니다.
30-40년을 예상했는데 50여년 세월을 간직한 컵이였군요.
컵을 첫대면하면서 그렇게 느껴지긴 했었어요..
아주 사랑받았던 컵이구나,
컵을 사용하신 분은 섬세하고 예쁜 분일 것 같다.
낡았지만 문득문득 격이 느껴지네.

이 컵 저컵 여러 브랜드의 컵을 사용하다보면
입술이 닿는 자리, 손잡이의 그립감에 대한 차이가 확연한데,
저 컵은 손잡이 부분에 아주 공이 많이 들어갔고
포도송이를 그려넣는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입술닿는 자리도 일일이 한번 더 눌려져 있어 편해요.
게다가 금박입힌 포도송이가 조명아래서 은은히 빛을 발하니
어떤 자리에서도 쫄지않는 미모이고......

고맙습니다.
이야기가 함께하니 빈 공간이 메워지면서 뭔가가 완성되는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애쉬 at 2014/03/31 11:51
와.... 정말 많은 세월 사랑 받은 잔의 두번째 인생이군요^^ 아...잔이니까 배생

이야기는 본체 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본디 주인 분도 건강하시길 빕니다.

멀리 이야기를 선물해주신 중매쟁이 구글러님에게도 감사를 보냅니다. 즐거워요^^
Commented by 랭보 at 2014/04/04 12:03
이야기는 본체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이야기의 정체성을 언급해주시는 군요, 애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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